1. 서론
오늘날 한국교회사 이해와 연구하는 방법은 지난 해석 방법과 비교하여 연구 방법의 변경에 중요한 논재를 야기했다. 오랜기간 선교적 관점에서 한국교회사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한국교회사는 새로운 힘을 갖고 넓게 확대되었다. 식민사관 극복의 과제를 안고 한국사 연구가 민족의 역사를 중심으로 연구되어야 한다는 당위에 더 이상 민족의 역사를 중심으로 한국교회사 이해와 더불어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1980년대 후반, 이만열 교수와 국사를 전공한 여럿 교수들을 중심으로 실증주의적인 방법이 한국교회사를 연구하는데 중심이 되었다. 일반 국사를 접근하는 과학적이고 실증주의적 방법론으로 한국 교회사를 이해하고 자신들의 방법론을 한국기독교의 역사라는 작품 속에 접목시켰다. 1990년대에 김영재 교수는 한국교회사 연국 방법론이 종교 개혁적 전통과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한게를 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개혁주의적 전통의 한국교회를 축으로 새로운 한국교회사 연구를 제시하였다. 이에 이와 같은 한국교회사 연구의 방향을 분석한 후, 한국교회의 복음주의 전통에 종합적인 한국교회사 해석을 하고자 한다.
2. 본론
2-1 한국교회사 연구 방법론 문제
20세기 이전 한국교회사와 관련된 기록된 도서를 찾기엔 어려움이 있다. 출간된 도서들 대부분이 "조선"을 다루면서 지엽적으로 종교나 교회를 언급한 것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멜 표류기, 조선 항해기, 서해안 항해기는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책들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에 대해서 인물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졌고 장로교회사전집이 출판되었지만 한국교회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말부터이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선교적인 방법론의 관점에서 기록되었다. 곽안련과 백낙준의 글은 이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곽안련 선교사의 한국교회와 네비우스 선교 정책은 역사신학적 방법론을 겸비한 한국기독교회사 연구는 아니지만 네비우스 선교 정책과 한국교회 발전에 미친 영향의 분석을 통해 한국교회사 전반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2-2 한국교회사 복음주의 해석
한국교회사를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측면에서 이해하고 한국개신교 전체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복음을 중심으로 하는 복음주의적 해석이 필요하다. 복음주의적 해석이란 장로, 감리, 성결, 침례교 등 한국 개신교 주류의 전통을 받아들이면서 교회의 핵심 사명 즉 복음을 전하는 것과 사회적 책임 그리고 순수한 복음을 한국교회사 연구와 평가 기준으로 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과 기독교 역사를 돌아볼 때 건강한 교회가 주차한 복음에는 복음 전파와 사회적&문화적 책임 그리고 복음의 순수성이 있었다. 이 세가지는 늘 상호협력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그만큼 이들은 기독교 역사 속에서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교단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한국교회는 세 가지 사명, 복음전파, 사회적 책임, 순수성 회복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해왔다. 그렇기에 세 가지 사명을 중심으로 한 한국교회사 역사서술 및 해석은 하나의 해석적 모양으로 정당성을 가진다.
2-3 네비우스 선교정책
네비우스 선교 정책은 한국교회 특히 한국교회의 부흥을 특징짓는 사경회 운동을 시작하게 했다. 사경회운동은 네비우스 선교정책의 산물이다. 사경회는 확대되어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1890년대 네비우스 선교 정책이 사경회를 중심으로 확장되면서 20세기에 들어서며 전국적으로 영적 각성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영적각성 운동은 놀라운 개인 변화 및 사회 변혁운동을 낳았다.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고 개인의 각성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변화를 초래했다. 기독교가 한국인들의 정신을 깨우고 진정한 민족의식을 심어 준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의 주권이 상실되던 을사늑약과 한일병탄 전후 수많은 국민들이 감옥에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기독교 신앙에서 소망을 얻었다. 복음을 접한 자들은 민족 독립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무력을 통한 독립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인간 본연의 주권을 회복하려는 비폭력 독립운동이다.
3. 결론
한국교회사는 과거 선교사 중심으로 역사가 연구되어져 왔다. 물론 한국에 복음이 들어오게 된 것은 선교사들이 조선을 방문하게 되면서 복음 전파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선교사들의 이후에 조선에서의 복음 전파는 많은 한국인들 중심으로 복음이 전파 되었고 특히 네비우스 선교정책이 일반 국민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특히 기독교 중심의 각성 운동은 단순히 무지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며 시작되었다. 더불어 시대적 한계와 교파의 장벽과 한국이라는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면서 한국교회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